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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메꽃들길을 걷다살며시 내 손을 잡는 꽃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풀숲을 타고 올라하늘을 향해분홍빛 나팔을 분다바람이 불면가녀린 몸을 흔들면서도쉽게 꺾이지 않는 마음아침이면 환하게 피었다가해가 기울면조용히 입을 다무는 꽃메꽃아너는 알고 있니화려하지 않아도누군가의 눈길 한 번 없어도제때 피어나제 몫의 여름을 살아가는 것이얼마나 아름다운지를나도 너처럼조용히 피었다가내게 주어진 계절을 다 살고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카테고리 없음 2026.08.25

서어나무

서어나무산길을 걷다회색빛 몸으로 서 있는 너를 만났다화려한 꽃도눈부신 열매도 없이묵묵히 숲의 한자리를 지키는 나무매끈한 줄기에는비바람이 지나간 세월이 새겨지고작은 잎사귀마다숲의 숨결이 조용히 머문다흔들려도 부러지지 않고비가 오면 비를 맞고눈이 오면 눈을 이고그렇게 한 계절씩 견디어 온 너서어나무야사는 일이란 어쩌면꽃처럼 피어나는 것보다한자리에서 오래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오늘도 너는말없이 숲을 지키고나는 네 곁을 지나며내 마음 하나 내려놓는다나도 너처럼조용히, 단단하게내 생의 숲 한가운데오래 서 있고 싶다.

카테고리 없음 2026.08.25

국수나무

국수나무산길을 걷다가만히 마주친 너가느다란 가지마다초록 잎을 매달고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국수 한 가닥 뽑아내듯길게 뻗은 가지 사이로햇살이 가늘게 내려앉는다누가 이름을 물으면나는 말해주고 싶다“나는 국수나무예요산길을 지나는 사람에게초록 국수 한 그릇마음으로 말아주는 나무랍니다.”소박하게 피어난 하얀 꽃처럼조용히 살아가는 너를 보며오늘도 나는산길 한 모퉁이에마음을 한 젓가락 걸어둔다.광고

시인의 방 4 2026.08.25

떡갈나무

떡갈나무산길을 걷다유난히 넓은 잎 하나가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얼마나 많은 비를 맞았을까얼마나 많은 바람을 견뎠을까잎맥마다 오래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떡을 싸던 너의 넓은 잎처럼누군가의 허기를 감싸주고도토리 하나 품어작은 생명에게 내어주는 나무말없이 서 있는 너를 보며나는 생각한다사는 일이란높이 자라는 것만이 아니라넓게 품어주는 것이라고오늘도 떡갈나무는산길 한켠에 우뚝 서서지나가는 사람의 마음 위에그늘 하나 펼쳐 놓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6.08.25

신갈나무

신갈나무산길을 오르다문득 걸음을 멈추었다바람 한 줄기에도사각사각 잎을 흔드는신갈나무누구에게도잘 보이려 하지 않고하늘을 향해제 몸 하나 온전히 세웠다비가 오면 비를 맞고눈이 오면 눈을 이고긴 겨울도 묵묵히 견디며한 해를 또 살아낸다푸르른 날에는푸르름으로 말하고잎을 떨구는 날에는비움으로 말한다가을 깊어지면도토리 하나툭, 내려놓는다내가 품은 것은이것뿐이라고그러나 그 작은 도토리 속에다시 숲이 자라고수많은 봄이 숨어 있다는 것을나는 오늘 알았다신갈나무야너는 오래 살아서큰 나무가 된 것이 아니라수많은 바람을 견디며끝내 제자리를 지켜서큰 나무가 되었구나나도 너처럼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고내게 주어진 자리에서조용히나의 계절을 살아가리라.

시인의 방 4 2026.08.25

우울물

어떤 사내에게서 문자가 왔다“샘이요지금 비가 오네요”비가 오면 빗물감기 들면 콧물그런데 나는왜 이리 우울한지 모르겠어요“그럼 이건우울물인가베요”말 같지도 않은 말에피식 웃으며그가 보내온빗방울 떨어지는 사진을 본다나 혼자 중얼중얼빗물은 내리면서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지동글동글지구가 둥글다고네모나지 말라고서로 사랑하라고빗방울 하나하나둥글게 퍼져가는 것이라고

카테고리 없음 2026.08.23

이질풀

수줍게 얼굴 붉힌 새색시,은은한 꽃다움에현초라 부른다네.신비하고 오묘한 기품을 품고아픔을 어루만지는숲속의 작은 의사.사람들의 발길에 밟혀도상처 난 마디마다다시 새순을 틔우고,아기 손바닥 닮은 잎새는바람에 살랑살랑작은 손을 흔드네.은은한 꽃다움에별명은 새색시,꺾여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꽃.밟히고 상처받아도다시 피어나는 너를 보며오늘도 나는 배운다.아픔 속에서도다시 살아나는 것이참으로 아름다운 일임을.

시인의 방 4 2026.08.23

병 풀

작은 잎 하나땅바닥에 바짝 엎드려누구의 눈길도 기다리지 않는다밟히면 다시 일어나고상처 난 자리에조용히 푸른 숨을 불어넣는다비가 오면 비를 품고햇살이 뜨거우면낮은 몸으로 그늘을 만든다나는 오래 살며 알았다큰 나무만이숲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말없이 자라는 풀 한 포기가때로는 사람의 마음을살리고 어루만진다는 것을병풀아너는 작아서 아름답고낮아서 더 단단하구나오늘도 땅에 붙어초록의 손을 펼쳐 놓고아픈 것들을 다독이는 너를 보며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누군가의 상처 곁에조용히 머무는작은 병풀 한 포기로.

시인의 방 4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