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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외

덕화2001 2007. 2. 28. 13:30
이상의 날개외  
이상 [ 李箱 ]  과 작품

주요작품 : 《오감도》 《날개》《봉별기》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보성고보(普成高普)를 거쳐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白川溫泉)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니까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지만 학교 때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요양지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과 함께 귀경한 그는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고 폐결핵과 싸우다가 갱생(更生)할 뜻으로 도쿄행[東京行]을 결행하였으나,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병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기 외에 소설 《지주회시(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이 있고, 시에는 《이런 시(詩)》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었다

종생기 [ 終生記 ]  

1937년 5월 《조광(朝光)》지에 발표(작자 사망 후). 25세 11개월을 맞은 '홍안미소년(紅顔美少年)'인 나는 멋진 종생(終生)을 계획한다. 열세 벌의 유서가 거의 완성되어 가는 어느 날 정임(貞任)에게서 속달이 왔다. 3월 3일 오후 2시 동소문(東小門)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날 나는 점잖게 한 30분쯤 늦게 그곳에 도착, 정임과 흥천사로 동행했다.

어느 구석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멋진 종생을 하려는 순간 절연(絶緣)한 지 다섯 달이나 되었다던 S가 정임에게 보낸 속달이 정임의 스커트에서 떨어졌다. "정임을 하루라도 바삐 나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어 달라는 정임의 열렬한 말을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겠소. …오늘(3월 3일) 오후 여덟 시…그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내가 눈을 다시 떴을 때 거기 정임은 없었다. S에게로 간 것이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

작자의 자의식(自意識)이 더욱 강하게 발로된 작품이다. 다분히 심리주의적인 어려운 문장이 곳곳에 난무한다.

날개  

1936년 《조광(朝光)》지에 발표되었다. 작자가 1933년 요양차 황해도 배천온천(白川溫泉)에 갔을 때 알게 된 금홍(錦紅)과의 2년 남짓한 동거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ꡐ나ꡑ는 구조가 흡사 유곽과도 같은 33번지에서 매춘부인 아내와 함께 산다. 아내에게 손님이 있으면 나는 윗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잔다. 손님이 가면 아내는 내게 돈을 주지만 나는 돈을 쓸 줄을 모른다. 어느날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주고 처음으로 아내와 동침한다.

그리고 어느날 정신없이 거리를 쏘다니던 나는 미쓰코시[三越] 옥상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아무데나 주저앉아 내가 자라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한다. 그 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작중에 나타난 나와 아내가 보여 주는 희화적(戱畵的)인 부부관계는 희화의 영역을 넘어 근대 지성인들의 모순된 자의식(自意識)의 해부라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의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로 일컬어지고 있다.

봉별기 [ 逢別記 ]
 
1936년 12월호 《여성》지에 발표되었다. 23세 3개월인 ꡐ나ꡑ 이상이 폐병 요양차 B온천장으로 가서 작부 금홍(錦紅)을 만나 동거하고, 이별과 동거를 거듭하면서 끝내는 다시 ꡒ작부가 된 그녀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영원히 헤어지기로 서로 합의를 본다ꡓ는 그의 첫 아내 금홍과의 생활경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감도 [ 烏瞰圖 ]

연작시.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연재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난해시(難解詩)로서 일대 물의를 빚어 독자들의 비난 투서가 빗발치듯 하므로 연재를 중단하기까지 하였다. 그만큼 파격적인 시로서, 그때까지의 시의 고정관념을 크게 타파한 작품이었다.

《오감도》 제1호에 등장하는 ꡐ13인의 아해ꡑ는 최후의 만찬에 나온 예수의 13제자를 상징한다는 해석과 무수(無數)를 나타내어 ꡐ13ꡑ으로 하였다는 설명 등 구구한 해설이 있으나, 평자에 따라서 무한한 견해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 구체적 의미파악이 불가능한 반면, 전체적인 인상에서 얻어지는 불안감․공포감․혼란감 등이 독자에게 막연히 전달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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