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시반공부 28

고은 시인3-4

지난 3주간에 걸쳐서 고은의 강의를 올려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의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강의는 그의 손버릇 전이었으므로 다시 묵상해 보는 의미에서 올려 봤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으로 인하여 망신당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 버릇의 결과 시문을 감상해 봅시다. ................. 괴물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문협시반공부 2020.10.06

고은시인 3-3

고은 시인의 강연 '내 안의 광야, 노래의 씨를 뿌려라’ 3-3 존재는 관계의 아들 우리는 단독자가 아니다. 관계적 존재로서 성찰이 필요하다. 산적한 문제를 우정의 연대로 풀어가야 한다. 존재는 관계가 만들어준 아들이다. 나 혼자 세상에 존재하면 고씨일 필요도 없다. 김씨도, 이씨도 의미가 없다. 혼자 있다면 내가 박정희면 어떻고 김일성이면 어떤가. 한자 이름 '명名'자는 원래 돼지고기를 제기에 올리는 상형문자에서 유래했다. 조상에게 제물을 올리며 내 이름을 승인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걸 다르게 풀어봤다. 시인 예이츠는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사랑은 언어가 필요 없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지 않나. 말하지 않아도 좋다. 심장이 통하는데 '주둥이'까지 가..

문협시반공부 2020.09.29

고은시인 강연3-2

고은 시인의 강연 '내 안의 광야, 노래의 씨를 뿌려라’ 3-2 나는 트렌드를 싫어한다 치유, 힐링… 난 이런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트렌드라는데, 나는 트렌드를 증오한다. 쟤가 입는 옷을 내가 입어야 하나. 누가 마신다고 나도 그걸 마셔야 하나. 삶은 살아가는 동안 자기가 사는 것이다. 어떤 자에 의해, 그의 규범이나 교훈·진리에 의해 노예처럼 살아선 안 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고 할머니의 손자가 아니다. 나는 나다. 고독한 우주에서 유일한 별빛이다. 나로서 살라. 내가 태초이자 시작이고 빅뱅이다. 내가 인생을 시작하고 살다가 패배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누가 가르친 대로 살지 마라. 내 실존의 지대한 존엄성에 대해 이 세계의 어떤 먼지도 모독할 수 없다. 술과 인생 술은 최고..

문협시반공부 2020.09.29

같은 배를 탄 사람들

같은 배를 탄 사람들 청량 이윤정 아지랑이가 꽃대 위에서 춤을 추던 날 새순 같은 동자승은 노스님과 배를 타고 예안 다래마을에서 부포동쪽으로 향한다. 배처럼 휘청거리고 일렁거리는 동자승의 허한 마음을 훤히 읽어 낸 노승은 염불 하나로 동자승의 눈에 담긴 엄마를 자꾸 씻어 내려 애를 쓰고 있다 나는 그 애타는 노승의 모습에 그만 마음의 골짜기 마다 물이 잔뜩 차올랐다 예안 호수는 시종일관 입에 거품을 물고 ‘저 작은 입에서 엄마의 젖꼭지는 언제쯤 빠져나갔지’ 자꾸 나한테 물어 본다. * 이 시는 문예지 심상에 발표 된 시입니다. * 이윤정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 청량산에서 태어나 안동 예안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공무원으로 경상남도 교육위원회 중등교육과에 근무하였으며, 중국 길림성 장춘 ..

문협시반공부 2020.09.08

9월이오면

9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 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

문협시반공부 2020.09.02